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거든요. 친구가 되어가는 따뜻한 이야기일 거라 짐작했는데, 실제로는 친구가 되지 못하고 밀려난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존의 뒷모습이 그렇게 오래 머릿속에 남을 줄은 몰랐습니다.
영화주제 : 페르소나, 가면 뒤의 진짜 얼굴을 궁금해한 적 있으신가요
영화 속 존은 처음부터 끝까지 프랭크의 인형 탈 안쪽을 궁금해합니다. 탈을 쓰지 않은 맨얼굴, 그게 진짜 프랭크라고 믿는 거죠. 처음엔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습니다. '저 탈은 결국 벗겨져야 할 것'이라고요.
그런데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달랐습니다. 프랭크의 탈은 단순한 가면이 아니었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페르소나(persona), 즉 사회적 상황에 맞춰 개인이 외부에 내보이는 역할 이미지와는 결이 달랐습니다. 페르소나란 본래 칼 융(Carl Jung)의 분석심리학에서 나온 개념으로, 개인이 사회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기능하기 위해 발전시키는 공적 자아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상황마다 우리가 쓰는 '사회적 얼굴'입니다.
프랭크의 탈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로부터 창의적 자아를 지키는 일종의 방어막이자, 그 안에서 가장 진실된 음악을 만들어내는 공간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단절의 형태는 생각보다 자주 마주칩니다. 글을 쓸 때도, SNS를 잠시 끊고 혼자만의 시간 속으로 들어갈 때도,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더 솔직한 무언가가 나오곤 합니다.
반면 존은 그 탈을 끝내 '벗겨야 할 것'으로만 바라봤습니다. 이건 단순한 호기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아동일성(identity), 즉 한 사람이 시간과 상황이 바뀌어도 일관되게 유지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을 존은 탈 밖에서만 찾으려 했던 겁니다. 여기서 자아동일성이란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이 제시한 개념으로, 개인이 내외부의 변화에도 '나는 나다'라는 연속성을 느끼는 심리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단절과 소통 : 우리는 정말 '연결'되어 있을까요
존은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밴드 연습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일상을 트위터로 중계하고, 팔로워 수가 늘어날수록 자신이 사랑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SNS 알림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더 공허해지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존의 착각이 남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개념이 이른바 파라소셜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입니다. 파라소셜 관계란 시청자나 팔로워가 유명인 혹은 콘텐츠 생산자와 실제로 상호작용하지 않으면서도 친밀감과 유대를 느끼는 일방향적 심리 관계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상대는 나를 모르는데 나만 친하다고 느끼는 관계입니다. 존의 팔로워들이 딱 그랬습니다. 그들은 존에게 진짜로 연결된 게 아니라, 그냥 '이상한 밴드'를 구경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실제로 과잉 연결(hyperconnectivity) 시대, 즉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어 있는 현대 사회 환경 속에서 역설적으로 고독감이 심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영국의 외로움 문제는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어,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이 임명된 바 있습니다(출처: BBC News). 연결의 양이 관계의 질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영화는 존의 이야기를 통해 조용히 보여줍니다.
존의 문제는 플랫폼이 아니었습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존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기보다 자기 이야기를 내보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밴드 멤버들과 충돌할 때도, 팬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도 마찬가지였죠.
매니저 돈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돈은 "프랭크가 되고 싶다"라고 말한 인물입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타인의 예술성에 기대어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 했습니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라 부르기도 합니다. 투사적 동일시란 자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이나 욕구를 타인에게 귀속시키고, 그 타인과 합일되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 심리 기제를 말합니다. 돈은 결국 프랭크의 탈을 뒤집어쓴 채 스스로 삶을 마감합니다. 프랭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존이 밴드에서 튕겨 나간 것과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실제로 자기수용(self-acceptance) 수준이 낮을수록 대인 관계의 질이 떨어지고 심리적 소진이 빠르게 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타인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 영화는 그 진실을 돈과 존을 통해 나란히 보여줍니다.
프랭크가 맨얼굴로 친구들 앞에 나타나던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멤버들은 놀라지도, 질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함께 노래했습니다. 그 장면에서 존의 자리는 없었고, 존은 끝내 나와버렸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조용히 밀려나는 순간이 사실 가장 쓸쓸합니다.
영화 프랭크를 보고 나서 한동안 SNS를 열기가 망설여졌습니다. 저도 어쩌면 내 이야기를 내보내는 데만 급급하지 않았나 싶어서요.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그 능력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 영화는 말없이 가르쳐 줍니다. 연결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사람이 더 드물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영화를 아직 안 보셨다면, 존의 뒷모습을 한번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